밴쿠버에서 로키산맥으로

나름 여행을 많이 해봤다 할 수 있다. 지구 어디쯤에 어떤 나라가 위치했는지 등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지구본을 돌리다가 무작위로 손가락을 찍었을 때 이게 무슨 나라인지 맞추는 퀴즈를 한다면, 적지 않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었다. 밴쿠버가 서쪽에 위치한다는 것도, 로키산맥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도 난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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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산맥과 캐나다 국기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나서야, 밴쿠버에서 출발해 로키산맥으로 향하는 사람이 많단 걸 알았다. 구글맵을 열어 거리를 가늠해 봤다. 멀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건 캐나다 스케일에서 멀지 않은 거였다. 서울에서 부산을 세 번은 왕복해야 갈 수 있는 거리였다는 걸 알고는, 렌트카가 최선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방법은 있고, 특히 한국인은 그 방법을 엄청나게 잘 마련해놨을 터. 밴쿠버에서 시작하는 로키산맥 삼박사일 투어를 찾았다! 성수기라 예약이 대부분 꽉 찼지만, 우리가 원하는 날에는 가능하다고 한다. 럭키! 심지어 렌트와 숙박 등등을 포함해 가늠해보았던 가격보다도 매우 저렴한 가격이라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래, 우린 로키산맥으로 향한다!

캐나다 국기 뒤로 보이는 마을

밴쿠버로 다시 돌아와 하루를 더 보낼 예정이었으나, 밴쿠버에 점점 정이 들어가던 차에 밴쿠버를 떠나는 게 아쉽기도 했다. 사흘이 지나서야 드디어, 밴쿠버는 이상한 사람은 많지만 위협적인 사람은 없단 사실을, 한 블록만 지나도 매우 다른 분위기가 펼쳐지는 도시라는 것을, 그리고 와이파이 없어도 숙소로 향하는 방법을 아는 도시라는 걸 알게 된 상태여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로키를 가니까!

눈 덮힌 로키산맥 앞에 휘날리는 캐나다 국기

아침 일찍 짐을 챙겨 숙소에서 나와야 했다. 캐나다 플레이스는 수많은 투어 버스들이 모이는 장소였지만, 우리가 탈 버스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무려 56인승 버스에 서너 개 정도의 좌석만 빼고 자리가 모두 찬다고 한다. 지금까지 했던 여행과는 많이 다를 것이 분명했다.

사실 로키 투어의 첫날은 이동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브리티시콜럼비아주에서 앨버타주로 넘어가는 여정이니, 그럴 만도 하다.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이면 어느샌가 시차 또한 바뀌어있을 것이다. 그사이에 많은 도시들도 스쳐 지나가겠지.

로키산맥 여행 중에 만난 호수

밴쿠버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퍽 이국적이었으나, 도심에서 멀어져 로키산맥에 가까워져 갈수록 그 이름이 가져오는 위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높게 뻗은 산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Rocky라는 말 그대로, 바위로 이뤄진 산은 거친 모습으로 혹은 강인한 모습으로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꽤나 많은 산은 가장 높은 위치 어딘가에 빙하를 머금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빙하에 이름을 붙였다. 계속해서 여행을 이어나간다면, 나만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빙하도 한두 개쯤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리는 버스에서 잠깐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도, 비슷하거나 혹은 완전히 다르게 생긴 산맥은 여전히 창밖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호수는 몇십 분을 달리는 동안, 우리 버스를 계속해서 따라다닐 정도로 컸다. 캐나다는 모든 게 커다란 나라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이 참이라는 사실은 휴게소에 들렀을 때 확실해졌다. 커다란 주차장, 커다란 편의점, 커다란 음료수… 그리고 그 뒤에 자리한 엄청나게 큰 이름 모를 산까지.

캐나다 길고양이캐나다 로키산맥 여행자 숙소
그리고 어느샌가 숙소에 도착했다. 진부하지만 가장 어울리는 표현으로, 동화 같은 숙소였다. 숙소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고, 뒤로는 푸르른 산이 자리하고 있다. 같은 광경을 호수에서 바라본다면, 호수 너머 자리한 숙소를 푸른 산이 감싸고 있는 거다.

우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바로 카누를 타러 갔다. 초록빛을 띤 잔잔한 물결 위에서 느리게 노를 젓는 동안의 우리는 마치 동화 속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강하지 않게 내리쬐는 햇빛은 찰랑이는 호수를 반짝이게 만들었다. 거기에 몽환적인 음악을 틀었다. 반사된 햇빛은 드럼 비트에 맞춰 조명을 만들고 있었다. 단지 이 순간만을 위해 그 먼 길을 달려온 거래도 괜찮을 정도로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푸른 호수 뒤의 아름다운 산

투어의 둘째 날도 아침 일찍 시작했다. 달리고 또 달리며 비슷하거나 다른 모습의 산을 여러 개 스쳐 지났다. 그리고는 설상차를 탈 수 있는 애서배스카 빙하(Athabasca Glacier)에 도착했다. 콜럼비아 대빙원에서 시작하는 거대한 빙하다. 웅장하고 압도적이며, 보고 있자면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설상차는 매우 느린 속도로 가파른 경사를 지나 우릴 목적지에 내려줬다.

7월인데도 공기는 매우 차가웠고 바람도 몹시 매서워, 우린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얼음이지만 미끄럽지 않은 빙하에서 괜히 들뜨는 마음이 들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미리 준비한 텀블러에 빙하수를 채웠다. 빙하에 손을 계속 넣고 있자니 손은 얼 것 같았지만, 빙하를 마시면 젊어진다니 병을 가득 채워 빙하수를 담아야 했다. 사실 젊어지는 건 둘째 치고, 온몸이 시원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았다.

돌아가는 길엔, 지구온난화에 대한 생각을 했다. 빙하에 발자국을 추가한다는 것은 어쩌면 빙하가 녹는 속도를 몇 초 정도는 앞당기는 행위가 아닐까 싶었다. 빙하를 만난 게 너무 반갑고 좋았지만, 그리고 자연을 자연 그대로 간직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캐나다 사람들이 존경스러웠지만, 어쩌면 몇십 년이 지나면 더 이상 빙하투어 같은 게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canada athabasca glacier애서배스카 빙하로키산맥의 애서배스카 빙하

유키 구라모토는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에서 머물며 동명의 곡을 썼다. 우린 그 선율을 들으며 레이크 루이스를 걸었다. 빙하는 마치 산 중턱에 걸린 구름 같았고, 구름은 하늘을 수놓은 빙하 같았다. 왼쪽으론 깎아내린 듯한 절벽이, 오른쪽으론 빼곡한 숲을 이룬 산이 자리한다. 그 사이로 빙하를 머금은 산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빛은 호수를 반짝이게 했다.

아주 느린 속도로 호수 주변을 걷고, 성처럼 생긴 저 호텔에서 커피 혹은 와인 한 잔을 마시면 나도 유키 구라모토처럼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에겐 그만큼의 시간이 없었다. 투어 여행이란 그런 거니까.

캐나다 레이크 루이스 여행레이크 루이스를 배경으로 뒷모습 사진cananda lake louise

셋째 날도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 버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정이다. 처음엔 놀라웠던 로키산맥의 위용도 익숙해졌는지, 버스에선 금세 잠에 들고는 했다. 밴프라는 지역에서 곤돌라를 탔다. 가장 높은 산의 봉우리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고, 밴프 도시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정도로 커다랗고 웅장한 경치를 바라보고 있자면, 거리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사람들이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곤돌라도 만들어두기는 했지만, 자연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의지도 엿볼 수 있었다. 건물들은 높게 솟구쳐있지 않고, 시야를 방해하는 것도 별로 없다.

높은 산 봉우리에서 바라본 캐나다 밴프의 전경canada banff city

로키산맥을 여행하다 보면, 정말 많은 강 혹은 호수를 만나게 된다. 비슷할 법도 한데,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보우폭포는 폭포 그 자체는 폭은 꽤 크나 높이는 낮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시작돼 흘러가는 물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면, 느리게 시선을 옮기는 영화의 한 폭처럼 느껴진다.

에메랄드 호수는 이름 그대로 에메랄드빛 호수를 담고 있다. 호수를 둘러싼 길을 천천히 걸으며 다른 각도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자연의 다리는 강물의 흐름이 겹치고 겹쳐 만들어진 돌다리다. 빠른 속도로 내리치는 강물과 겹겹이 쌓인 바위의 모양새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이 이 장소를 빚어낸 건지를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캐나다 에메랄드 호수canada emerald lake물살이 거센 캐나다 에메랄드 호수잔잔한 에메랄드 호수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이어진 밴프 시내를 산책하며, 강가 어딘가에 자리한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마도 우리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이 있다면, 야외 테이블이 있는 카페 혹은 바에 들어가 시원한 아메리카노 혹은 맥주를 마시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찾는지 구경할 테지. 자유여행에 익숙한 우리였지만, 이런 형태가 아니라면 훨씬 더 힘들고 볼 수 있는 경치는 더 적었을 거란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쩌면 다음번에, 그리고 다른 계절에 여기를 다시 찾을 수도 있는 거니까.

캐나다 여행중 밴프 시내의 강가캐나다 밴프 여행자 슬구의 뒷모습캐나다 밴프 강가의 오두막집캐나다 밴프의 쑾

3박 4일이라고는 하지만, 마지막 날의 일정은 밴쿠버로 돌아오는 것뿐이다. 생각보다 밴쿠버 도심에 일찍 도착해, 오후엔 잉글리시 베이 비치를 찾았다. 그리고는 해변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해변을 찾았다. 저마다의 시간을 사람을 구경하니, 그리고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즐기고 있자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로키와 밴쿠버는 물리적인 시차도 있을 정도로 먼 곳인데, 어느샌가 로키를 떠나 밴쿠버 해변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또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짧은 오전을 보낸 후 공항으로 향해야 한다. 캐나다에서의 시간은 알차게 보낸 만큼,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캐나다 해변 잉글리시 베이 비치의 여행자 정인캐나다 여행중인 당당한 슬구

지금까지 여행지를 선택할 때 미주를 들여다본 적은 거의 없었는데, 왜 여길 와본 적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다음번엔 오로라를 보기 위해 캐나다를 찾는 건 어떨까! 여행이 끝날 때 느끼는 아쉬움은 다음 여행에 대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쉼 없이 떠나자.

캐나다를 여행해서 신난 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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