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날 동안 飮하고 食한 것

이번 여행에서는 먹는 것에 그다지 돈을 쓰고 싶지 않았으므로
절반가량은 라면/덮밥/햄버거로 때웠다.

몇 번인가 끼니를 거르거나 과자 같은 걸로 때웠고.
남은 몇 안 되는 식사를 모아 정리해보았다.

빅맥

일본에서 먹은 맥도날드 빅맥혈관 막히는 안 좋은 습관 중 하나는, 육체적으로 힘 들 때 햄버거를 찾는 것이다. 나는 특히 밤새 술 먹은 다음 날이나 발바닥이 빠지도록 돌아다닌 날이나 수면 부족으로 빌빌대는 날 콜라와 햄버거가 무척 댕긴다.

이번 여행에서 맥도날드를 찾은 것은 두 번이었다. 첫 번째가 첫날 저녁 11시쯤 숙소 앞에 도착해서였고, 두 번째가 마지막 숙소로 옮긴 다음 날 덮밥 먹기도 지겨운데 배는 고프고 또, 이것저것 메뉴 골라가며 먹기는 싫었던 날이었다.

빅맥은 지구촌 어딜 가나 맛이 똑같아서 정말 고맙지만 콜라 맛은 점포마다 시간마다 다르고 감자 맛도 마찬가지라 절반만 고향이고 절반은 모험이다. 그래도 매 끼니 사 먹는 사람에게 그 정도면 꿀 탄 해골 물이다.

빅맥 세트에 690엔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보다 비싼 건가? 확실한 건 마츠다 보통 사이즈 규동보다는 비싸다는 것.

가츠 카레

도쿄 여행의 첫 점심식사였던 가츠 카레국립박물관 갔다가 점심으로 먹은 가츠 카레. 도쿄에서의 첫 점심 식사였다. 마츠야처럼 바 같은 테이블에 한 명씩 나란히 앉아 먹는 곳이었는데 낯선 방식에 어깨를 있는 대로 움츠려가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보통의, 아주 보통의 가츠 카레. 560엔.

토리키조쿠

일본의 봉구비어 토리키조쿠에서 마신 산토리 맥주일본의 봉구비어. ‘토리키조쿠’. 토리는 닭이고 키조쿠는 귀족이란다.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뭐 닭고기 백작, 닭고기 공작, 닭벌귀족 이런 느낌이겠지. 닭고기 꼬치류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좀 섬뜩하지, 귀족들을 서민들이 먹어치우는 거니까. 완전 스위니 토드다.

같이 간 사람에게 메뉴를 추천받아 시켜 나눠 먹었다. 닭가슴살 꼬치와 염통 꼬치, 고기완자 꼬치 같은 걸 먹다가 시키는 것도 귀찮아져서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안주로 종목을 변경했다. 나는 감자튀김이 먹고 싶었고 상대방은 완두콩을 시키자고 했다. 저녁을 먹지 않은 채로 갔지만 쫄쫄 굶은 배에 맥주가 들어가니 배가 금방 찼다.

일본의 완두콩 안주이거 일본식 주점 가면 가끔 기본 안주로 주는 거. 가격은 기억 안 나는데 아마 몇 천 원 했겠지. 짭조름하고 배도 안 부르고. 맥주 안주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아, 물론 한국에서는 잘 안 먹는다. 찾지도 않고. 아니 그냥 콩이 싫다. 으으.

왜 여행 중에는 평소에 안 먹는 음식들을 먹게 되는 걸까.

CITY COUNTRY CITY 1 – 명란 크림 파스타

일본 시모티자와 맛집 city country city의 명란 크림 파스타걸어서 시모키타자와에 도착했을 때나는 꽤 지쳐있었다. 배는 울다 지친 아이처럼 기절해있었고 비록 오는 길은 즐거웠지만 볕을 너무 많이 쐰 덕에 정수리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미리 인터넷에서 조사를 해놓은 레코드숍/펍/카페 City Country City로 들어왔다.

건물의 4층에 위치한 조그마한 가게에는 벽을 따라 LP 판들 이 장르별로 진열되어 있었고, 주방 앞에 4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카운터 석, 테이블이 서너 개 정도 배치되어 있었다. 영문 메뉴가 없어 추천 메뉴를 물으니 순무-명란 크림 파스타를 추천해 주셔서 (메뉴가 나오고서야 알았다) 레드와인 한 잔과 함께 주문했다. 명란젓이 섞인 꾸덕꾸덕한 크림 파스타와 삶은 순무가 잘 어울렸다. 굶주려서 그랬던 걸까? 정말로 순식간에 싹싹 긁어먹었다. 지금이라도 먹으러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은 정도로 내 입맛에 잘 맞았다.

city country city에서 마신 와인아마 300엔을 추가하면 음료와 샐러드가 함께 나오는 시스템이었던 것 같다. 샐러드는 발사믹 계열의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드레싱이 뿌려진 양상추 샐러드였고, 와인은 적당히 미지근하고 달았다. 마치 햇빛 한 모금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면 지랄인 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렇게 적고 싶어지는 맛. 그래, 나 이 가게 좋아해. 그래서 뭐?

나오기 전에는 바이닐을 구경했다. 한창 시티팝을 많이 들을 때라 아무래도 눈이 펑키/디스코 계열로 갔지만 뭘 알아야 사지! 들어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차분히 고를만한 시간은 없어서 ‘New Arrival’과 ‘CCC Dance Music’ 상자에 들어있는 것들만 몇 개 눈도장을 찍고 문을 나섰다.

the 3rd Burger

도쿄 미나미 아오야마 버거 맛집 the 3rd burger제3의 버거. 쉑쉑버거와 원수진 나의 버거 철학은 ‘건강함과 버거는 양립할 수 없다’이다. 아마 한 20년쯤 후의 나는 지금의 나를 한 대 갈겨주고 싶어 하겠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건강과 버거는 양립할 수 없는 단어라고. 만약 당신이 제3의 버거를 먹을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

미나미 아오야마에서 정오의 뙤약볕 아래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고 있을 때 이 버거 가게와 마주쳤다. 나트륨이 부족해 보이는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알지 못하는 버거 체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버거인(人)’적 사명감에 매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고로 거의 차 있는 좌석이 믿는 구석이 되어주었다.

생소한 대표 메뉴 고추냉이(와사비)-아보카도 버거를 시키고 10분 정도 기다리자 진동벨이 울렸다. 받아들고 온 쟁반에는 쉑쉑버거와 비슷한 양의 음료, 감자튀김, 버거가 놓여있었다. (가벼워라!)

도쿄 맛집 the 3rd burger의 고추냉이 아보카도 버거돼지는 눈을 홉뜨고 빠르게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그녀가 이 버거를 사랑하지 않는 마지막 순간이었다는 것을!

아보카도 크림소스의 부드러운 식감과 방금 구워낸 소고기 패티가 입안에서 황홀하게 펼치는 바로크적 2중 주가 어금니를 지나 식도를 넘어가며 마무리되는 순간, 고추냉이라는 이름의 멜다우(Brad Mehldau)가 만족스러운 날숨을 타고 순식간에 이 버거의 장르를 최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변환시킨다.

갓 튀겨낸 짧고 통통한 감자튀김은 어떠한가! 버거에 부족한 버거 세트 본연의 악마적 특성을 훌륭하게 재현해낸 충분한 나트륨의 양이 자연스럽게 콜라를 끌어당긴다. 이는 버거 세트의 화성적 재해석이자 계몽적 혁명이었다.

스몰 세트, 1만 원 정도.

텐동

롯폰기 아자부 텐동 맛집 메뉴판아자부와 롯폰기 대부분의 식당이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는 어정쩡한 오후가 되어서야 배고픔이 귀찮음을 이겼다. 교차로를 몇 번이나 건너면서 돌아보았지만 끌리는 메뉴가 보이지 않아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올 때쯤 눈에 뜨인 덮밥집.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음에도 왜 그렇게 헤맸을까, 우산을 정리하는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니 꽤 넓은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2층까지 있구나, 실내에 있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직원을 보고 생각했다. 1인석에 앉아 메뉴를 골랐다. 왼쪽 상단의 텐동이 명물이라고 적혀있어서 별생각 없이 텐동을 주문했다.

일본 텐동내가 튀김을 좋아하던가? 그렇지, 좋아하지. 특히 얇고 바삭한 튀김옷을 좋아한다. 와그작 소리가 날 정도면 더 좋고. 메뉴판 속의 사진을 보며 콩닥콩닥 가슴 졸이기를 몇 분. 종업원이 가져다준 트레이 위에 수줍게 얼굴 내민 텐동은 참, 뭐랄까. 희었다. 내가 실망을 했던가? 그렇지, 실망했지. 왜냐, 튀김이 하얘서.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알고 복권은 긁어봐야 안다. 텐동은 튀김이 아니잖아? 튀김 덮밥이지.

튀김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닐 뿐 속은 알찼으니 맛이 없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의외의 행복은 촉촉한 흰쌀밥과 계란 노른자 (밥 위에 얹혀있음) 그리고 간장소스의 조합이 환상적이었다는 데서 찾아왔다. 아, 어찌나 행복하던지. 차라리 튀김을 빼고 밥이랑 계란만 한 그릇 더 줬으면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흐흐. 달달한 흰쌀밥 최고. 1050엔.

팟타이

도쿄 롯폰기 팟타이 맛집일본의 주소 체계는 잘 모르지만 나의 추측으로는 ‘丁目’가 ‘동’같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이 음식점은 롯본기 7동… 몰라. 그냥 롯본기7쵸메에 있다. 그날, 원래는 저녁을 건너뛰려고 했으나 밤 10시쯤 배가 고파져서 어쩔 수 없이 ‘때깔은 죽어서 내자’하고 매콤한 팟타이를 먹으러 나갔다.

전해 들은 풍문에 의하면 일본의 음식점에서 ‘매움’표시가 되어있는 음식도 보통의 한국인들에게는 전혀 맵지 않을 수 있다고 하여서 주문 시에 조금 더 맵게 해 주실 수 있냐고 여쭤봤더니 테이블 위에 있는 고춧가루통을 보여주셨다. “이거 뿌려 드세요.” 눈치껏 알아들었다.

롯폰기 팟타이 식당의 주방내부가 독특하다. 사진에서 보이듯 주방이 유리로 막혀있다. 유리 너머 주방에서는 세 명의 요리사가 이국적인 노래를 틀어놓고 흥겹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신명 나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신이 났다. 하마터면 따라 일어나서 춤출뻔했다;; 휴

일본 롯폰기에서 먹은 팟타이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그렇게 잘 먹는 편도, 자주 먹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렇게 당겼던 걸까? 팟타이에 들어있는 면이 꾸덕꾸덕해질 정도로 고춧가루에 버무리다시피 해서 먹었다.

팟타이는 맛있는 편이었다. 제대로 향신료도 들어있고, 피시 소스의 맛도 풍성하게 느껴졌다. 접시까지 씹어먹을 기세로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홈페이지 가격 1100엔.

추억의 사라다 소스

미드타운 식료품점에서 산 사라다 소스와 식빵미드타운의 지하 식료품점에서 타르타르 소스와 식빵 한 줄을 샀다. 진열되어 있는 소스들 중에 가장 작은 것을 골라 샀다. 살짝 주홍빛이 도는 색이었는데 보는 순간 어렸을 때 슈퍼에서 팔던 ‘사라다’ 소스가 떠올랐다.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고 잘게 썰린 피클과 양배추 같은 게 들어있던. 무척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아서 서운했었다. 아무튼 그 소스의 맛이 날 것 같아 샀는데, 다음날 먹어보니 정말 그 맛과 비슷한 맛이 났다. 반가워라! 빵에 뿌려 먹기만 했는데도 꽤 맛있어서 며칠간 아침 식사로 먹었다.

-2탄에서 계속

Published by 오지노라상

허비는 행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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